교주와 보혜사 (보혜사)에게 성령
1. 교주
교주는 교회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며, 그 간판이 예수교이면 예수님이 그 교회의 주인 (교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집에 자신의 문패 (이름)를 붙이면 그 문패가 집주인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천주교 (천주교)는 천주가 주인이며 장로교는 장로가 주인이라는 것이된다. 장로교는 영어로 Presbyterian 며 교회의 운영을 장로들의 합의제로 하자는 칼빈의 장로주의로 구성되었다. 한국의 장로교는 겉으로는 예수교 (기독교)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장로가 모든 교권을 잡고 주인의 권위를 행사하고있다. 예수교라는 간판이 붙어 있으면 예수님이 교주가되는 것이지 목자 또는 장로가 교주가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교주라고 그 사람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하는 것이고 그런 이야기를하는 사람은 이단이며 비진리의 사람이다. 이단은 대개 상대를 "교주"이니 운운 말하면서, 박해, 모욕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단이 주로 쓰는 법칙이라고보아야 않는 것이다.
종교는 신, 즉 영의 교리이다. 예수교는 예언과 믿음과 실상의 종교이며, 장로교는 칼빈 교이며, 예정설이 그 핵심 교리이다. 속임수 이단은 예수교와 캘빈 교 (장로교)이 둘 중 어느 쪽 일까? 또한 어느 쪽이 정통 일까?
2. 보혜사 ( = 한 · 성, 일 성 = 보혜사 ⇒ 다음 보혜사로한다)
보혜사는 그 한자가 '보호 할 보, 은혜의 은혜 사범 (박사)의 스승」에서 은혜로 보호하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스승은 선생님으로서 배우는 학생을 은혜와 진리로 가르치고 보호한다. 하나님은 시편 2 편에 '교훈을 아들에게서 배우 "라고 말했다. 4 복음서에 보면이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생님과 말하고, 듣고, 묻고, 배웠다. 요한은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보혜사 (보혜사)에게 말했다 (Ⅰ 요 2:1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대언 해 주신 (요 8:28 , 17:8 , 14 참고).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쳐 은혜로 보호 해 주셨다. 이 증거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신앙인은 아무도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을받은 예수님은 보혜사로서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요구하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 하셨다 (요 14:16 , 26 ).
예수님은 육체이고 성령이 예수님 께 임 하셨다 (마 3:16 , 요 1:32 ). 성령을 받아 대언하고 보호하고 가르치고 은혜를 주신이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한 것은 그 말의 의미에 따라 생각해 보면 조금도 이상한 일 아니다. 요한 계시록 19 장에서 천사의 영은 예수님의 일을 요한에게 알려 요한은 천사의 영을 통해 예수님의 것을 받아 성도들에게 전했다 때문에 (계 10 장), 모두 같은 대언 자이다. 예수도 천사도 요한도 대언자이며,이 대언자의 사명이 보혜사이다. 성령은 영 이요 보혜사는 직책 곧 사명이다. 성경 지식이없는 사람이 보혜사 성령 라고만 착각하고 있고, "성령은 보혜사 다, 보혜사는 성령이다."라며 뜻 모를 이야기를하는 것이다.
3. 성령
성령은 그 한자가 "거룩한 성령의 영"으로 거룩한 성령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하나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거룩한 영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막 8:38 , 행 8:26 , 29 , Ⅰ 코리 2:10 , 계 17:1 ~ 3 , 계 21 : 9 ~ 10 참고).
영의 세계는 계시록 4 장과 같이 영들 각각의 사명이있다. 영은 같은 영이지만, 각각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즉 직책은 다르다. 천의 수천 배, 만 수만 배의 천사 안에穂恵사의 성령이있다. 초림 당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때문에 (요 5:43 ) 하나님의 대언자 인 것처럼 (Ⅰ 요 2:1 ), 보혜사 성령은 예수 이름 오시는 때문에 (요 14:26 ) 예수님의 대언자이다.
성령이 없었던자가 성령을 받으면 그 사람은 성령의 하나됨 (Ⅰ 코리 6:17 참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받은자가 '성령이 나와 함께있다 "고 말할 때, 그를 박해하는 사람은 자신이 성령을받지 못한 때문 박해하는 것이다. 박해하는 것은 자신이 성령을받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된다 (요 8 장, 카라 4:29 참고). 초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요 20:22 )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 (행 2:1 ~ 4 ) 그리스도의 영이없는자는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롬 8:9 )라고 한 말을 알고 있다면, 아무도 함부로 성령이없는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4. 결론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장 잘 믿고 아는 척을하고, 전통을 정통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비진리로 바꾸어 말하면서 진리의 증거를 이단으로 몰아 말라 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것과 (요 5:43 ),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이름으로 온 것을 믿지 않는 행동은 더 이상하지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 되신 (요 10:30 , 요 14 장, 16 장). 그리고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마음으로 왔기 때문에 엘리야가 곧 세례 요한이었다 (마 11:10 ~ 14 , 눅 1:13 ~ 17 ). 이와 같이, 영은 육 (사명자)을 사용하여 작동하는 (Ⅰ 요 4:1 ~ 6 참조).
"보혜사의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는 진리의 성령은 사람 (너희) 속에 거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보혜사 성령 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배운다. "고 하셨다 (요 14:16 ~ 17 , 26 ). 진리의 성령은 대언자를 선택 사람들에게 가르친. 대언자의 보혜사의 사명을 가진자가 진리의 성령과 하나가 됐다는 이야기는 무엇이 잘못인가? 진리의 성령을받지 않았 더라면, 적어도, 입이 끼지 않았 으면 좋겠다. 알고도 없는데 왜 비난하고 핍박 하는가? 그런 행동은 자신에게 성령이 없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구약의 예언은 예언 된 하나님 께서 아들 이신 예수님 오신해서 이루어지고 (호 2:19 ~ 20 , 사 19:1 , 20 , 마 3:16 , 요 1:32 ) 그 때부터 계시로 알게되고, 그 이전에는 아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었다. 이와 같이 신약의 예언도 예언하신 예수님과 약속의 목자 보혜사가 올하여 이루어지고, 이때부터 계시로 알게되고, 그 이전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아는 척 정통 인 척하지 말라.
∘ 한 길이 총에 물어 몇 가지 질문
- "기독교인 인사이드 '제 2 호 2008 년 7 월 14 일 기사 중 한 장 총 이소 대 위원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 이단 대책위원회) 박사, 교수 등이 주장한 내용을보고 -
미리 성경 6 천 년의 역사에서 보았는데 다른 교단을 이단과 핍박 한 그들이 참 이단이고 정통이라고 자부 한 그들이 오랜 전통이며 이단 이었음을 말해 둔다.
질문 1)
- 성령은 하나님 이시며, 하나님은 유일한 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성령이 하나님 한 분뿐이라면 계시록 4 장 일곱 영을 왜 하나님의 일곱 영 이라며 요한 복음 3 장에 왜 성령을 한없이 준다고 스데반이 왜 사도 행전 7 장에 성령 충만이라는 말을 한 것인가?
- "거룩한 천사들 ','거룩한 영들 '을 한자로 쓸 때, 어떤 문자로 작성해야합니까?
질문 2)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말하고, 또 다른 보혜사를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했지만,이 점에 대해 질문한다.
- 보혜사 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께 구하는 때문에 아버지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된다. 보내실 분은 하나님이며 보내신 분은 보혜사 이시다. 에서는이 보혜사가 어찌 하나님이 되는가? (요 14:16 ~ 17 , 26 )
요한 복음 16 장 8 ~ 15 절에 보혜사 성령이 와서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예수님의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계시록 전체 장의 요약이다 계시록 1 장 1 ~ 3 절을 보면, 계시의 전달 순서는 하나님, 예수님, 천사, 요한 종들이 순으로 전달되어 요한 계시록 5 장 에서 10 장까지의 책의 전달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예수님이 천사에게 천사가 요한에게 요한이, 민족, 나라와 방언과 임금들에게 전달했다. 이렇게이라면 진리의 성령 보혜사가 어찌 하나님이 예수님이되는지?
우리 신천지는 이와 같이 성경으로보고 이단 교리와 비진리를 받아 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없다. 보혜사가 직책 (사명) 인 것도 모르고 "성령은 보혜사 다, 보혜사는 성령이다"고 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주장, 자신의 판단, 자신의 기준에서 "이렇다, 저렇다"라고하는 것은 자의적인 속임수의 이단이다 (겔 13:1 ~ 3 ).